데이트 by. 유솔대해(@white__conch)
“정하얀님!”
헐레벌떡 달려오는 소라가 보여 입가가 절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기분이 좋았다. 소라와는 언제나 한 몸같이 붙어있었는데 며칠씩이나 떨어져있다니. ‘그 날’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오빠가 옆에 있어주긴 했지만 다시 돌아온 뒤 바빠진 오빠가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었으니까. 옆에 아무도 없을 때면 가끔씩, 그 날의 악몽이 상기돼 기분이 저조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어떻게 안 건지 여신의 거울을 통해 소라가 연락해오곤 했다.
‘정하얀님, 잘 계시죠?’
그것을 보고 있으면 이것저것 걸어놓은 마법들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불안감이 사르르 녹아 내리곤 했다.
“소라도 참, 언니라고… 부르라니깐.”
“아, 맞아. 입에 붙어버려서, 자꾸 깜빡 하네요. 네, 하얀 언니.”
갑작스러운 호칭의 변화에 자꾸 실수를 하고는 하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면 당황스러워 하며 자신에게 언니라고 바꿔 부르는 소라는 귀여웠기에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둘이서 외출하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요, 오랜만이네요.”
살풋 미소 짓는 소라를 보자 기분이 들떴다. 역시 소라는 나를 제일 좋아해. 몇 마디 위로를 조금 해줬다지만 그건 걔가 하도 힘든 척 하니까, 소라가 착해서인 것 뿐이야. 소라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나 뿐인 걸. 이렇게 소라가 같이 외출하는 것도 나 밖에 없어.
“저, 드릴 게 있어요.”
아까부터 무언가를 주저하는 듯 자신을 이끄는 발걸음이 점차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약간 긴장감과 해방감이 뒤섞인 듯한 표정으로 상자 하나를 자신을 향해 내밀었다. 보라색 리본으로 화려하게 포장된 검은 상자. 마치 소라와도 같은 포장에 내용물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마음이 들떠왔다.
“그냥, 하얀 언니가… 생각나서요.”
“와아, 이게 뭐야?”
“별건 아니고 팔찌예요. 언니 눈에는 안 찰 수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의 포장을 풀어헤치고 열었다. 새하얀 팔찌였다. 군데군데 붉은 장미모양의 보석이 들어간, 차분한 듯 화려한 팔찌. 마음에 꼭 들었다. 바로 손목에 차보자 느슨하게 걸려 찰랑이는 것이 예뻤다.
“소라가 보기엔… 내가 이 팔찌 같아?”
“네? 네…”
자신의 물음에 살짝 볼을 붉히며 대답하는 모습에 저절로 볼이 슬그머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구나, 소라가 보기엔 내가 이렇게 보이는 구나. 가슴에 무언가 따뜻하고 뭉클한 것이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헤헤, 고마워.”
부끄럽고 쑥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기쁘고 설렜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무언가 익숙해 고개를 갸웃 하려는 찰나, 소라가 팔을 붙잡아왔다.
“그럼 가요, 정하얀님. 아니, 하얀 언니. 지금 예약해놓은 데가 엄청 유명한 맛집이거든요. 데이트 명소래요! 분명 언니가 먹기에도 맛있을 거예요. 분위기도 되게 좋더라고요. 다음에 부 길드 마스터랑도 같이…”
자신에게 팔짱을 낀 채 설명을 늘여놓는 목소리를 즐겁게 듣는데 무언가 거슬리는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어라?
“다른 사람이랑, 가봤어?”
“네?”
“좀 전에 분명, 가본 것처럼… 누구, 누구랑 갔었어?”
낭패라는 듯 입술을 깨무는 게 보였다. 뭐야, 누구길래? 왜 그런 반응을 보여? 내가 알면 안되기라도 해? 나보다 가까워? 누군데, 누구냐고. 이빨이 까득 갈렸다.
“왜, 왜 말을 못해? 역시…”
“아뇨! 그….”
우물쭈물 하던 소라가 자신의 손을 세게 잡아 끌며 입을 열었다. 천천히 말끝을 잡아 끌며 대답하는 것을 보며, 약간 비껴 내려 깐 채 마주치지 않는 시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하얀 언니랑 같이 가보고 싶어서… 혼자 미리 와봤어요. 같이 왔는데 맛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마음이 턱 놓였다. 그럼 그렇지. 소라가 그럴 리가 없는데. 소라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 그럴 리가 없잖아.
“헤헤, 역시 그렇지?”
소라는 내 것인데. 소라만큼은,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는 나만의 것인데. 소라가 그럴 리가. 마음이 안도감으로 충만해졌다.
"우와, 진짜 예쁘다."
과연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구나. 오밀조밀 사랑스럽게 플레이팅 돼서 나오는 요리들을 보며 한껏 감탄했다. 감탄사와 칭찬을 내뱉을 때마다, 아닌 척 뿌듯한 표정을 짓는 소라가 귀여웠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되게 맛있어요."
요리를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들자, 자신의 몫으로 나온 음식을 포크로 집어 나를 향해 건네주는 소라가 보였다. 별 생각 없이 평소처럼 그대로 입으로 받아먹자, 입 안 가득 부드러운 소스의 맛이 퍼져 나갔다.
"응! 마, 맛있다! 소라가 해준 것보단 별로지만, 그래도 맛있어."
신이 나서 대답을 하는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소라가 눈에 들어왔다.
'어, 어라?'
왜 얼굴을 붉히지? 의아함에 곰곰히 되새겨보다 방금 전 자신들의 모습이 주변 연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르르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상해. 소라는 친구인데.'
왜 자꾸… 오빠랑 있을 때처럼 설레지? 이게 뭐지? 의문이 연달아 떠올랐다. 원래… 친구와 있으면 이렇게 설레는 걸까? 난생 처음 가져본 친구였기에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 음식 다 식겠어요, 어서 먹어요!"
어색해진 공기를 풀어보겠다는 듯 다급하게 소라가 외쳤다.
"으응, 그래. 그, 그러자!"
음식도 충분히 맛있고, 분위기 역시 다시 좋아졌지만 한번 떠오른 의문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질 않아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부 길드 마스터가 기다리시겠어요."
"헤헤, 소라도 잘 들어가."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머뭇거리던 소라가 볼에 입을 맞춰왔다. 달콤한 향기와 함께, 쪽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그냥,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의 의미예요. 그만, 들어가볼게요!"
"어? 어어, 응, 그래."
멍한 정신으로 후다닥 들어가는 소라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현관문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뭔가 이상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정신이 몽롱했다.
'아, 아까 계속 와인을 마신 탓일 거야. 그래야 해.'
'나한텐, 오빠 뿐이니까.'